SUMMER ELEMENTS

아티스트가 다루기 어려운 물성을 순하게 치환하는 과정에서 조우하는 일시성. 그 짧은 초상은 타오르는 계절과 닮았다.

흰 모시 한 필을 꺼내며 생각한다. ‘이 천으로 짜이기 전엔 들판의 풀이었겠지. 햇빛을 듬뿍 받고 어느 날엔 대찬 소낙비를 맞기도 했겠지. 올마다 그 기억이 아로새겨졌을까? 내가 다시 고운 삶을 선물해야지.’ 커다란 모시를 창에 걸어두니 햇빛을 순하게 걸러냈다. 덕분에 그 안에서 사람들은 시원하게 쉬었다.
모시로 만든 햇빛 가리개. 최희주 작가의 작품으로, 양 끝단을 그대로 두고 접어 만든 선으로 고요한 리듬을 표현했다.

빛을 여과 없이 통과시키는 아름다운 유리. 하지만 나는 1200℃의 용해로에서 발광하는 주황빛에서 유리의 미학을 본다. 액체도, 고체도 아닌 상태의 유리를 파이프에 말아 기포막을 여러 겹 입히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색이다. 무수한 기포의 군집이 영롱한 건 그 안에 저마다 제 시간을 가둬둔 까닭이다.
여러 겹의 기포막이 물안개를 연상시키는 ‘Fog’ 시리즈 화기는 김동완 작가의 작품.

많은 가공 방식 중 캐스팅을 주로 사용한다. 금속의 첨예한 변화와 의외성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금속 표면의 온도와 반영은 여름에 한층 극적으로 변한다. 파도길 위로 쏟아지는 햇빛 가운데 바싹 타들어갈 것 같은 패각. 금속을 이용해 여린 조개껍데기에 영속성을 부여했다.
이윤정 작가가 황동 소재로 만든 일곱 가지 모양의 작은 패각 POÉSIE.

열기가 들어오지 못하는 대숲에 들어가 나무를 치고, 털썩 소리 나게 바닥에 앉아 살을 얇게 뜬다. 단단한 댓살이 내 까칠한 손끝에서 휘청 휘어지며 죽기의 모습을 갖춰간다. 여름 바람 한 줌과 같이 엮인 대바구니를 바라보며 시원한 대숲을 홀로 걷는 상상.
최경수 작가가 얇고 단단한 담양 댓살을 격자 모양으로 엮어 만든 바구니 POÉSIE.

contributing editor 성보람(POÉSIE)
photographer 장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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